곡괭이를 판 사람은 파산했다 — 금광에서 AI까지, 가장 단단했던 부의 순서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곡괭이를 판 사람은
파산했다
투자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조언이 있습니다. “금을 캐지 말고 곡괭이를 팔아라.” 유행을 좇지 말고 그 뒤의 인프라를 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곡괭이를 판 사람은 파산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다섯 시대를 나란히 놓고 확인해보겠습니다.
1849년, 샌프란시스코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자 이듬해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우리가 골드러시라고 부르는 사건이고, 몇 년 사이 약 30만 명이 서부로 향했습니다.
그중 새뮤얼 브래넌이라는 상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금을 캐지 않았습니다. 대신 근처의 곡괭이·삽·냄비를 미리 사들인 뒤, 금가루가 담긴 병을 들고 거리에서 소식을 외쳤습니다. 사람이 몰려오자 도구를 팔았습니다. 그는 캘리포니아 최초의 백만장자가 됐습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이야기입니다. “금을 캐지 말고 곡괭이를 팔아라”라는 조언은 정확히 이 사람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브래넌은 말년에 빈털터리로 죽었습니다. 반면 같은 골드러시에서 시작한 웰스파고라는 회사는 17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금을 캐지도, 곡괭이를 팔지도 않은 회사입니다.
본론 전에, 단어 세 개만
뒤에서 계속 쓰이는 말이라 먼저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어려운 개념은 아닙니다.
- 인프라
- 어떤 산업이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바탕. 골드러시의 곡괭이와 운송, 인터넷의 통신망, AI의 데이터센터와 전력이 여기 해당합니다.
- 캐펙스(설비투자)
- 기업이 공장·장비·건물을 짓는 데 쓰는 돈. 남의 캐펙스가 곧 내 매출인 회사가 있습니다. 장비 회사가 대표적입니다. 이 관계가 뒤에서 아주 중요해집니다.
- 복제 가능성
- 경쟁자가 돈과 시간만 있으면 똑같은 것을 만들 수 있는지. 케이블을 더 까는 일은 돈만 있으면 가능하지만, 수십 년의 축적이 필요한 장비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글의 핵심 잣대입니다.
다섯 시대, 실제로 남은 것
각 시대마다 대중이 몰려간 대상이 있었고 그 뒤의 인프라가 있었습니다. 통념대로라면 인프라가 이겨야 합니다. 결과를 하나씩 보겠습니다.
금광1848–1855
광부 대부분은 본전도 못 건졌습니다. 인프라 쪽이 이긴 건 맞습니다. 다만 어떤 인프라였는지가 다릅니다. 곡괭이 상인 브래넌은 파산했고, 남은 것은 웰스파고였습니다. 금을 동부로 옮기고 대금을 정산해준 운송·금융망입니다.
또 하나. 새크라멘토에서 잡화상을 하던 네 명은 광부에게 물건을 팔아 번 돈을 철도로 바꿨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토지를 확보했습니다. 가장 크게 남은 부는 금도, 곡괭이도 아닌 땅이었습니다.
철도1830–1900
철도는 그 시대의 인터넷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철도 회사들이 대거 파산했습니다. 1873년과 1893년 공황 때입니다. 원인은 과잉건설이었습니다. 같은 구간에 노선이 여러 개 깔리자 운임이 무너졌습니다.
돈이 남은 곳은 따로 있었습니다. 철도에 철강을 판 카네기, 파산한 철도를 재편한 금융가 모건, 그리고 물량을 쥐고 철도에 운임 할인을 강요한 록펠러. 록펠러는 철도의 공급자가 아니라 고객이었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밴더빌트와 해리먼은 철도를 짓지 않았습니다. 공황 뒤에 헐값으로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철도가 최종적으로 남긴 자산은 운임 수입이 아니라 노선을 깔기 위해 확보해둔 토지였습니다.
인터넷1995–2010
1996년 미국이 통신 규제를 풀자 자금이 쏟아졌습니다. 광케이블을 깔겠다는 계획만 있으면 상장도, 회사채도, 대출도 나왔습니다. 근거는 한 문장이었습니다 — “인터넷 트래픽은 100일마다 두 배가 된다.”
깔아둔 케이블 중 실제로 신호가 흐른 것은 2002년 기준 2.7%였습니다. 나머지는 그냥 땅속에 있었습니다. 업계에서는 이걸 다크파이버, 불이 들어오지 않은 케이블이라고 불렀습니다.
글로벌크로싱은 5년간 150억 달러를 들여 전 세계 해저망을 깔았고, 존속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습니다. 주가는 169달러에서 22센트가 됐고, 지배지분은 결국 2억 5천만 달러에 넘어갔습니다. 광부품 업체 JDS유니페이즈는 한 해에 506억 달러 손실을 냈습니다. 당시 미국 기업 사상 최대치였습니다.
그런데 케이블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2005년에도 85%가 안 쓰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2010년에 영상 스트리밍이 가능해진 이유였습니다. 통신망은 필요했고 결국 쓰였습니다. 다만 헐값에 넘어간 새 주인 밑에서 쓰였습니다.
스마트폰2007–2020
이번엔 인프라가 아니라 단말기 회사가 최대 승자였습니다. 한때 전 세계 휴대폰 산업 이익의 대부분을 한 회사가 가져갔습니다.
공급망 안에서도 승패가 갈렸는데, 여기서 기준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이긴 쪽 — 반도체 노광 장비, 파운드리, 명령어 집합, 통신 모뎀 특허. 전부 돈이 있어도 몇 년 안에 따라 만들 수 없는 것들입니다.
진 쪽 — 디스플레이, 배터리 셀, 조립. 전부 자본만 있으면 누구나 공장을 지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조립 업체의 영업이익률은 한 자릿수 초반에 머물렀습니다.
다섯 시대를 관통한 문장
채점 결과를 나란히 놓으면 통념이 절반만 맞았다는 게 보입니다. 그리고 갈린 지점은 항상 같았습니다.
인프라가 이긴 게 아니라,
복제할 수 없는 자리가 이겼습니다.
광케이블은 분명히 필수였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깔 수 있었기 때문에 소유자에게 돈을 벌어주지 않았습니다. 필수적이라는 것과 돈이 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문장을 실제로 쓸 수 있게 만들면 질문 세 개가 됩니다.
- ①복제 가능성 · 돈과 시간만으로 따라올 수 있는가따라올 수 있다면 언젠가 따라옵니다. 광케이블·디스플레이·조립은 여기서 걸렸고, 노광 장비와 파운드리는 통과했습니다. 물리적 난이도와 수십 년의 경험이 방어막 역할을 합니다.
- ②캐펙스 파생 · 내 매출이 남의 설비투자 예산인가가장 잔인한 질문입니다. 남이 공장을 지을 때만 내 물건이 팔린다면, 그 예산이 줄어드는 순간 매출이 그대로 꺾입니다. 라우터·광부품·메모리·장비가 전부 여기 걸렸습니다.
- ③잔존물 · 사이클이 꺼지면 무엇이 남는가토지와 채권과 표준은 남고, 장비와 재고는 남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세 번째 질문에는 함정이 하나 더 있습니다. 다음 층에서 쪼개보겠습니다.
“남는다”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철도와 광케이블은 겉으로 똑같은 사건이었습니다. 빚으로 지었고, 너무 많이 지었고, 지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파산했고, 그런데도 자산 자체는 멀쩡히 남았습니다. 네 가지가 전부 일치합니다.
그런데 그다음이 완전히 갈렸습니다.
철도는 살아남은 노선이 지역 독점이 되면서 운임을 회복했습니다. 정부가 요금 규제 기구를 만들어야 할 만큼 힘이 돌아왔습니다. 반면 광케이블은 통신 요금이 끝내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싸게 인수한 쪽도 크게 벌지 못했고, 이익은 전부 그 위에 올라탄 인터넷 기업들에게 갔습니다.
같은 폐허인데 한쪽에서는 승자가 나왔고, 한쪽에서는 안 나왔습니다. 왜 갈렸는지가 이 글에서 가장 실용적인 부분입니다.
이유 하나 · 남아도는 것을 없앨 수 있었나
철도는 같은 구간의 노선을 합병해서 없앨 수 있었습니다. 밴더빌트와 해리먼과 모건이 한 일이 정확히 이겁니다. 공급을 줄이니 가격이 돌아왔습니다.
광케이블은 합병해도 케이블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땅속에 그대로 있습니다. 오히려 회사가 파산하면 그 자산이 더 싼 원가로 다시 시장에 나옵니다. 공급을 줄일 방법이 물리적으로 없었습니다.
이유 둘 · 기술이 기존 자산의 용량을 늘렸나
이쪽이 더 결정적입니다. 선로 하나가 실어 나를 수 있는 열차 수는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광케이블에는 여러 파장의 빛을 한 가닥에 동시에 흘려보내는 기술이 나왔습니다. 그 결과 이미 깔려 있는 유리 한 가닥의 용량이 수백 배로 늘었습니다. 아무도 새로 안 깔아도 공급이 매년 저절로 증가한 셈입니다.
다크파이버가 20년 넘게 어두웠던 진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미 깔린 것조차 다 켤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 남는 것을 합쳐서 없앨 수 있다
- 기술이 발전해도 용량은 대체로 고정
- 자리가 지리적으로 배타적이다
지은 사람도 살아남을 수 있다
- 남는 것을 없앨 방법이 없다
- 기술이 기존 자산의 용량을 폭증시킨다
- 파산해도 더 싼 원가로 재등장한다
자산만 살고 지은 사람은 못 산다
자산이 남는 것과
가격이 돌아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 질문을 “무엇이 남는가”로만 던지면 철도와 광케이블이 같은 답을 냅니다. 둘 다 남았으니까요. “남은 뒤에 가격이 돌아오는가”까지 물어야 갈립니다.
다만 반전이 하나 있습니다
광케이블은 결국 전부 쓰였습니다. 동영상 스트리밍이 그 용량을 다 소비했습니다. 값이 싸지니까 오히려 총 사용량이 폭증한 것인데, 경제학에서는 이걸 제번스 역설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광케이블형이라고 자산이 죽는 게 아닙니다. 시점이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 자산이 정말 필요해지는 때가, 지은 사람의 빚 만기보다 늦게 옵니다. 철도형은 그 간극이 짧았고 광케이블형은 길었습니다. 그리고 그 간극을 견디게 해주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자금 조달 구조입니다.
그래서, 가장 단단했던 순서
지금까지의 질문을 통과하는 순서대로 다섯 시대의 승자를 세우면 이렇게 됩니다. 위로 갈수록 오래 남았고, 아래로 갈수록 화려했다가 빨리 사라졌습니다.
여기서 아이러니가 나옵니다. “인프라를 사라”는 조언을 따르는 사람이 실제로 사게 되는 건 대개 6번입니다. 가장 눈에 잘 보이는 인프라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오래 남은 1~3번은 지루하고 뉴스에도 잘 안 나옵니다.
남의 설비투자가 내 매출이면,
사이클을 그대로 얻어맞습니다.
호황 구간에는 이 자리의 실적이 가장 좋아 보입니다. 그래서 판별이 어렵습니다. 실적이 좋은 이유가 고객의 예산이 폭증했기 때문이라면, 그 예산이 정상화될 때 실적도 같이 정상화됩니다.
부의 이전은 붕괴 때 확정됩니다
다섯 시대에서 반복된 마지막 규칙입니다. 가장 큰 재산은 호황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폭락 뒤에 확정됐습니다.
1893년 공황 때의 모건, 파산한 철도를 사들인 밴더빌트와 해리먼, 그리고 2002년 이후 남아돌던 통신망을 사실상 공짜로 쓴 인터넷 기업들. 전부 현금을 들고 폭락장을 산 쪽입니다.
그래서 진짜 질문은 “무엇이 필요한가”가 아닙니다. 광케이블은 분명히 필요했고, 실제로 지금 전 세계가 쓰고 있습니다. 질문은 이겁니다 — 그 자산을 누가, 언제, 얼마에 갖게 되는가.
AI 사이클에 대보면
판정이 아니라 어디를 봐야 하는지의 지도입니다. 먼저 앞의 세 질문부터.
| 자산 | ① 복제 가능성 | ② 캐펙스 파생 | ③ 잔존물 | 사다리 |
|---|---|---|---|---|
| 전력 접속권 · 부지 | 불가 (인허가·계통이 방어) | 아님 | 남음 | 01 |
| 노광 · 파운드리 | 불가 | 일부 | 남음 | 03 |
| 가속기 · 소프트웨어 표준 | 공격받는 중 | 해당 | 표준은 남음 | 04 |
| 전력설비 · 변압기 | 리드타임이 방어 | 해당 | 설비는 남음 | 05~06 |
| 메모리 · HBM | 자본으로 증설 가능 | 해당 | 재고는 안 남음 | 06 |
| 데이터센터 건물 | 자본으로 증설 가능 | 해당 | 건물은 남음 | 06 |
그리고 04층의 두 질문을 겹치면
| 자산 | 남는 걸 없앨 수 있나 | 기술이 용량을 늘리나 | 유형 |
|---|---|---|---|
| 전력 접속권 · 부지 | 애초에 과잉이 안 생김 | 아니오 | 철도형 (순수) |
| 데이터센터 건물 | 가능 (착공 중단) | 아니오 | 철도형 |
| 전력설비 · 변압기 | 가능 (감산) | 아니오 | 철도형 (약함) |
| 메모리 · HBM | 가능 (감산) | 예 — 미세화·적층으로 같은 공장의 생산량이 자동 증가 | 혼합형 |
| 가속기 · 연산 | 어려움 | 예 — 알고리즘·추론 효율화로 같은 칩의 처리량이 자동 증가 | 광케이블형 |
노광·파운드리는 애초에 복제가 불가능해 과잉의 작동 방식이 달라 이 표에서는 제외했습니다.
주목할 곳은 두 군데입니다.
첫째, AI 사이클에서 광케이블형을 만드는 것은 물리적 증설이 아니라 효율 개선입니다. 같은 칩에서 처리량이 몇 배로 늘어나면, 한 장도 새로 안 사고 공급이 늘어난 것과 같습니다. 여러 파장을 한 가닥에 실었던 그 기술과 구조가 정확히 같습니다.
둘째, 메모리가 혼합형인 점이 흥미롭습니다. 감산이 가능해서 가격은 회복되지만(철도형), 같은 공장에서 나오는 생산량은 기술 발전으로 계속 늘어납니다(광케이블형). 메모리 30년 역사가 정확히 이 모양이었습니다 — 사이클마다 가격은 돌아오는데 장기 추세선은 계속 내려갔습니다.
반대로 데이터센터 건물과 전력 접속권은 철도형입니다. 지어놓은 걸 기술로 부풀릴 수 없고, 지을 수 있는 자리도 정해져 있습니다. 다만 철도형이라고 안심할 일은 아닙니다. 철도형의 승자는 지은 사람이 아니라 합병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자산은 살아남습니다.
지은 사람이 살아남지 못할 뿐입니다.
그래서 이번 사이클에서 하나만 지켜본다면 자금을 어떻게 조달했는가입니다. 자기 돈으로 지은 설비가 실패하면 주주가 손실을 봅니다. 빌린 돈으로 지은 설비가 실패하면 자산의 주인이 바뀝니다. 부의 이전이 확정되는 지점이 바로 거기입니다.
댓글
댓글 쓰기